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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마음

샤프펜슬s 2021. 2. 22. 17:58

[그림1]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일본에서 나쓰메 소세키라고 한다면 일본 문학의 거장이라 일컬으며 찬사를 보낸다고 하지만, 나는 국내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아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그 이유가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일본은 서구의 식민사관을 흡수하여 외부로 팽창하던 시기로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아래 그들의 야만적 행위를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괜히 그 시대의 작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선뜻 책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마음’이라는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거부감이 든다’는 말 한마디로 이 책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건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다. 번역본 기준 281페이지라는 짧은 글 안에 어떻게 온전한 사람 하나를 옮겨놓을 수 있는지, 나는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였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그로 인한 모순, 자신을 향한 분노와 실망, 망설임을 하나의 인물에 담아 입체적인 형태로 빚어내었는데, 나는 작가가 직접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지었다던 광고 문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파악하고 있는 이 작품을 권한다”

 

 

또 이 책은 추리소설과도 같은 매력을 지닌다. 총 3부작으로 진행되는데, 2부까지는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선생님(등장인물 모두 글이 끝날 때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의 모습과 그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그려낸다.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는 말은 하나하나가 모두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어째서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 말하는지 ‘나’와 독자 모두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선생님의 과거를 담은 –선생님이 나에게 쓴-편지인 3부를 읽으면 독자는 선생님의 행동 에 모두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작품 속에서 그 누구도 추리를 하라고 시키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지만 시간을 두고서 하나씩 풀려가는 자물쇠는 작품의 몰입을 높여주었고, 책을 덮고 나서도 가슴속에 잔잔한 여운 하나를 남겨주었다.

 

 

나는 세 가지 기준 아래 명작을 평가한다. 하나는 몰입성으로, 그 작품에 내가 얼마나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다른 하나는 보편성이다. 과연 이 책이 일부 지역에만 통용되는지, 아니면 다른 곳, 더 나아가 시대를 초월해서도 책이 그 가치를 잃지 않고 계속 빛을 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마음이라는 책은 출간된 지 백 년이 넘은 책이지만 마치 지금 사람들을 직접 보면서 말을 건네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찍이 그 사람 앞에 무릎 꿇었다는 기억이 다음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얹으려고 하는 걸세.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거절하고 싶네. 나는 지금보다 한층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네. 자유와 독립, 자아로 가득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네”

 

 

선생님이 말한 이 긴 대화문 중 하나에서 나는 인생의 진리를 여럿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면, 그 사람은 이후 나를 뛰어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며 그것이 나 자신을 짓누르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또 독립과 자유, 자아가 우선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집단에 속해있더라도 우리는 고립된 것과 같은 단절감,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 그는 말했다.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서 나쓰메 소세키가 작품의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격언들이 나에게 큰 울림을 가져다주었으니, 이를 통해서도 보편성은 충분히 달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명작을 평가하는 마지막 기준은 바로 시대반영성이다. 해당 작품이 얼마나 그 세대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이 책 곳곳에서는 인물의 사상이나 대화 등을 통해 서구 문물이 막 들어오던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잘 녹여냈다. 작품 내 글을 인용하여 자세히 예시를 들고 싶지만 그런 부분이 너무 많으므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그 당시 일본인들이 일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가부장적 사회와 고학력자를 대한 경외심이 구성원의 사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등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감상문을 마치고자 한다. 과거에 친척에게 배신을 당하고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된 선생님이 ‘나’에게 과거를 털어놓을 결의를 다지는 장면이다.

 

 

 

“자네는 정말로 진심인가?”라고 선생님은 확인하듯 물었다.

“나는 과거의 일로 인해 사람을 의심한다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의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네. 하지만 자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의심하기에 자네는 너무 단순하네.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고 싶네. 자네는 그 단 한 명이 될 수 있겠나? 돼 줄 수 있는가? 자네는 진정으로 진심인가?”

“만약 제 생명이 진심이라면, 제가 지금 한 말도 진심입니다.”

내 목소리는 떨렸다.

 

 

 

* 이하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므로 열람 시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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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번외

3부 선생님의 편지에서는 선생님의 과거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특히 여기서 K라는 인물은 선생님과 매우 긴밀한 접점이 있는 인물로, 그가 자살하면서 선생님 또한 평소 염세적이던 성격이 점점 더 깊어졌다. 표면상으로는 K는 선생님에게 하숙집의 딸을 빼앗겨 자살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선생님이 표현한 K의 성격 등을 통해 그가 단순히 여자를 빼앗겼다고 자살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 K는 어째서 자살했나?

작중 그의 성격은 선생님의 편지 곳곳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전략) 불교의 교리로 성장한 그는 의식주에 대해서 사치하는 것을 마치 부도덕한 것인 양 여겼네. 어중간하게 옛날 고승이나 성자의 전기를 읽은 그는 곧잘 정신과 육체를 따로 떼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지. 육체를 단련할수록 영혼의 빛이 더욱 밝아진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네.

  

 

 보시다시피 그는 사상을 깊게 탐구하는 것을 즐겼고, 그 의외의 것은 모두 사상 탐구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권유로 하숙집에 들어올 때에도 K는 하숙집 딸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숙집 딸에게 반하게 되고, 그 마음을 선생님에게 털어놓는다. 선생님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K에게 하숙집 딸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며 갈팡질팡한다. 기회를 엿보던 선생님은 어느 날 K와 산책하며 얘기를 나눈다.

 

 

 그는 나에게 막연히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네. 그 말은 연애의 깊은 못에 빠져 있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보이느냐는 질문이었지.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자신에 대해서 나의 비평을 듣고 싶은 것 같았네.

(중략)

내가 K에게 그 일에 어째서 나의 비평이 필요한지 물었을 때, 그는 평소와 다르게 풀이 죽은 어조로 자신이 약한 인간이라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고 했네. 그렇게 망설이고 있다가 자기도 자신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나에게 공평한 비평을 부탁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지. 나는 즉시 망설이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따져 물었네. 그는 앞으로 나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를 망설이고 있다고 설명했네. 나는 즉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지. 그러고는 물러서라고 하면 물러설 수 있느냐고 물었네. 그러자 거기서 갑자기 그의 말문이 막혔네.

(중략)

“정신적으로 향상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바보다.”
나는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했네. 그리고 그 말이 K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바라보고 있었네.
“바보야.”하고 이윽고 K가 대답했네. “나는 바보야.”

 

 

 결국 K는 선생님의 질타로 인해 금욕적 생활을 이어나가며 도를 닦고자 했던 자신의 이상과 하숙집 딸에게 반해버린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심한 괴리감을 느끼며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K는 하숙집 아주머니를 통하여 선생님이 하숙집 딸에게 청혼했고, 이것이 성사되었다는 말도 듣는다. 이를 통해서 K는 가장 친한 친구인 선생님조차 믿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자신도, 타인도 믿지 못하게 된 K는 ‘조금 더 빨리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한탄 섞인 유언장을 남기고 자살한다.

 

 

(전략) 나는 결국, K가 나처럼 혼자 외로움을 견딜 수 없게 된 결과 갑자기 죽기로 결심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네. 그리고 다시 오싹해졌지. 나도 K가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예감이 바람처럼 나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던 탓이네.

 

 

숙부에게 친부모의 재산을 빼앗겨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K의 죽음을 통해 자신 또한 숙부와 진배없음을 알게 되어 자기혐오에 빠졌던 선생님의 처지와 K를 놓고 비교해본다면 K의 상황은 선생님과 아주 비슷했다. 결국 선생님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2. 선생님의 죽음

선생님은 남겨진 아내가 걱정되어 함부로 죽을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K가 죽은 그 날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계속된 고통은 선생님을 좀먹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 짐을 아내와 나눌 기회도 충분히 있었고, 아내 또한 이를 원했지만 타인을 믿지 못한다는 그의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어쩌면 그는 꽤 오래전부터 죽음을 기다려 왔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원인만 생긴다면 그는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죽음에 표면적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내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만약 별다른 말없이 선생님이 자살을 통해 생을 마감한다면, 아내는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선생님은 신문을 통해 메이지 일왕이 사망하고, 노기 장군이 순사(殉死)를 했다는 소식을 받는다.

 

 

 

(전략)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꼽으며 노기 대장이 죽기를 결심하고 살아온 햇수를 계산해 보았네. 세이난 전쟁이 1877년에 있었으니까 1912년까지는 35년이라는 세월이었지. 노기 대장은 35년 동안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며 죽을 기회를 기다려 온 것이라고 생각됐네. 나는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살아 있는 35년이 괴로웠을까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르는 한 순간이 괴로웠을까, 하고 생각했네.

 

 

‘순사’라는 표면상 이유가 마련된 선생님은 ‘나’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보낸 후, 어릴 때부터 질질 끌어온 내적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결국 자살을 택한다.

 

 

 

3. K와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고찰

 K와 선생님은 작품상 모두 고학력자인 도시 사람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리고 작품 내 둘은 모두 자신과 타인을 믿지 못하는 고립상태였는데, 나는 이것이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했다고 해석했다. ‘자유와 독립, 자아로 가득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네’라는 선생님의 말이 이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13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할 만큼[각주:1]

 현대에 이르러 자살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지 못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비관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일을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이 인물을 그려낸 작가가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1. 서한기, ‘하루 36명, 40분마다 1명 자살하는 나라...13년째 OECD 1위’ 2018. 1. 23., 연합뉴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