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최종성과공유회가 무사히 끝났지만, 아직 저희에게 남은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달 동안 진행했던 현장사업의 성과물을 본부 직원분들과 음리쇼감보중(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11월 28일 갑작스러운 교장선생님의 해임으로 인해 교사수업이나 구글클래스룸 개설 같은 12월에 예정되었던 여러 프로젝트가 모두 취소되면서, 현장사업이 영광스러운 저희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현장사업 개관식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자세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현장사업 개관식 (12월 1일)
현장사업 개관식은 우리가 11월 한 달 동안 진행했던 현장사업의 성과물을 본부 직원과 기관 선생님들 및 학생들에게 널리 알리는 동시에 정식으로 자산을 이관하는 행사입니다. 현장사업 개관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누구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롯이 단원들 스스로가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최종성과공유회와 부담감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FM님께서도 현장사업 개관식 준비에 조언이나 자료검토 등 다양한 부분에서 큰 도움을 주셨지만, 모든 것이 처음인 두 사람이서 준비하는 것이다 보니 그 도움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현장사업 프로젝트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일전 일기에서 자세하게 적었으니, 이번 시간에는 개관식을 위해 저와 팀장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기억나는 것 위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현수막
현수막은 500*90 크기로 10월 16일에 견적서를 받아두었던 곳에서 구매했습니다. 현수막을 받아본 당시에는 인쇄품질도 괜찮았고 무사히 견적서에 적힌 대로 잘 만들어져서 ‘현장사업 개관식까지 현수막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없겠다’라고 생각하며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현수막 설치장소에 대해 미리 협의해두지 않고 코워커 선생님의 ‘현수막 걸어둘 공간은 많다’라는 말만 믿은 탓에 현장사업 개관식 전까지 가장 큰 골칫덩어리였던 것이 바로 이 현수막이었습니다. 11월 29일 오전 10시, 성과공유회 면담 이전에 잠깐 학교에 방문해서 현수막을 걸 공간을 찾기 위해 코워커 선생님과 함께 컴퓨터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컴퓨터실 처마 밑에도 살펴보고 컴퓨터실 외부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마땅히 걸어둘 곳이 없더군요. 결국 저희가 사용한 방법은 검은색 덕트테이프를 학교 근처 문방구점에서 구한 다음 모서리를 꼼꼼하게 붙이는 방법뿐이었습니다. 마치 만화의 강조선처럼 되어서 눈에 거슬렸지만, 저 방법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만약 다시 현수막 견적서를 받으러 가는 날로 돌아간다면 현수막을 걸 위치를 미리 협의한 후 구입할 것 같습니다. 다른 팀에서는 500*90 크기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만들었으니 만약 개관식을 진행하실 분이 계시다면 참고하기 바라겠습니다.
(2) 프로젝트 성과물 인계 증명서
프로젝트 성과물 인계 증명서는 저희의 주요 성과인 10KW 발전기와 수리된 음향장비를 음리쇼감보중(고등)학교에 인계한다는 내용을 문서화한 것입니다. 해당 부분은 자산 인계 절차가 생소한 팀장 대신 제가 문서 작성부터 행사 진행 방법까지 구상했습니다. 먼저 프로젝트 성과물 인계 증명서는 (1) 사업개요 (사업명, 인계 기관, 인수기관, 일시 및 장소), (2) 사업 성과 목록 및 인계 물품, (3) 인계/인수 조항 세 부분에 나눠서 작성했습니다. (1) 사업개요와 (2) 사업 성과 목록 및 인계 물품은 기존에 작성되어 있는 보고서를 참고하면 되는 터라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계/인수 조항의 경우 KOICS 철수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FM님께서도 가장 많은 피드백을 주신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프로젝트 성과물 인계 증명서는 영문으로 번역해 2부를 인쇄한 뒤 팀장이 작성한 발전기 가동 매뉴얼과 함께 빨간색 파일에 철하여 넣어두었습니다.
인계 문서가 완성된 후 다음으로는 인계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여러 방법을 머릿속에서 대입해 본 결과, (1) 본부 측 대표자와 기관 측 대표자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선 뒤 (2) 빨간색 파일에 있는 인계 문서 2부를 모두 서명하는 방식이 가장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서명 순서는 인계자가 인수자에게 자산을 넘겨주는 논리에 맞춰서 본부 측 대표자 – 기관 측 대표자 순으로 정했으며, 서명이 완료된 파일철은 인계 문서 1부(향후 문제 발생을 대비한 본부 보관용)를 제외하고 모두 기관 측에 드리기로 했습니다.
(3) 팸플릿
팸플릿은 디자인 감각이 매우 높은 팀장이 오롯이 담당했습니다. 팜플렛 내용은 (1) 프로젝트 요약, (2) 프로젝트의 필요성, (3) 핵심 성과와 (4) 프로젝트 결과 및 기대 효과 순으로 구성했습니다. 굳이 팸플릿을 만들어 배부한 이유는 본부와 기관 측 사람들에게 우리의 성과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개관식에서도 현장사업에 대해 짧게 발표하는 시간을 갖지만 저희는 모든 사람들이 발표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열심히 발표를 듣는다 하더라도 휘발성이 굉장히 강하기에 쉽게 잊힐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발표가 끝나더라도 사람들이 다시 현장사업 관련 내용을 상기할 수 있도록 자료를 나눠주었습니다. 팸플릿은 본부 측 사람들과 기관 측 사람들 모두를 고려해 한글 1부와 영문 1부를 만들었으며 KOICS 사무실에서 인쇄했습니다.
(4) 영상 제작 및 사회 준비
현장사업 관련 내용 발표는 팀장의 몫이었으나 전체적인 현장사업 요약 영상 제작은 또다시 제 담당이 되었습니다. 최종성과공유회는 11월 28일, 현장사업은 12월 1일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영상을 새로 만들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11월 홍보영상 중 현장사업 부분만 잘라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팀장은 ‘현장사업 개관식에 오는 손님 중 절반 이상이 최종성과공유회에 오셨던 사람들이라 지루해할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11월 29일에 현장사업 개관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영상에 추가로 삽입하는 형태로 팀장의 우려를 해소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영상편집이 끝난 후 저는 곧바로 사회자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실력만 놓고 보면 팀장이 한 수 위였지만, 팀장은 현장사업 발표를 맡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제가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회에서 가장 큰 변수는 ‘사람’이었습니다. 각 프로그램마다 누가 나와서 무엇을 할지가 개관식 직전까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부르는 부분을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하여 누구로 바뀌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대본은 촉박한 일정으로 인해 12월 1일 새벽 5시까지 수정을 거듭한 끝에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5) 현장사업 개관식
현장사업 개관식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날 개관식을 진행하는 아루샤중(고등)학교의 팀장님과 우리 팀의 팀장님이 함께 협의하여 결정되었습니다. 솔직히 각자 다른 날에 개관식을 진행했다면 훨씬 편했을 겁니다. 그러나 본부 직원들의 출장날짜는 제한되어 있어 개관식 날짜를 바꿀 수는 없었고, 우리 팀은 음리쇼감보중(고등)학교 측에서 출장뷔페 서비스를 신청해두었으므로 오후보다는 오전에 진행하는 편이 훨씬 나았습니다. 오전에 개관식을 진행한 후 출장부페 서비스로 점심을 해결한 뒤 아루샤중(고등)학교로 이동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팀은 오전 8시에 도착해 현장사업 개관식 준비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2시간이 꽤 촉박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미 11월 29일에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탄자니아는 언제나 저희에게 변수를 가져다주더군요. 개관식이 진행될 컴퓨터실에 도착하니 현수막은 떨어져 있지를 않나, 열과 행을 맞춰서 놓아둔 의자와 책상 배치도 전부 원래대로 돌아가 있지를 않나, 말 그대로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저와 팀장은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저와 자주 여행을 다니셨던 남자 단원분께서 저희를 도와주기 위해 시간을 내어 와 주셨다는 점입니다. 멀쩡했던 제 노트북이 갑자기 말썽을 일으키거나, 본부 직원분들께서 저희의 예상보다 40분 일찍 도착하시는 등 여러 변수가 연달아 들이닥쳤지만 셋이서 힘을 합쳐 겨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개관식은 탄자니아 측 손님분들께서 40분 늦게 도착하시는 바람에 오전 10시 40분이 되어서야 겨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쏟아지는 고난 중에서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해임되셨던 교장선생님께서 이번 행사에 참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번 현장사업에서 누구보다도 저희를 도와주셨던 분이셨던 만큼 이번 행사에 반드시 참석해 주시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해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저는 행사 시작 전 교장선생님께 가서 제가 입었던 흰색 KOICS 티셔츠를 가방에서 꺼내어 건네드렸습니다. 이 흰색 KOICS 티셔츠는 저와 교장선생님 사이의 약속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저희가 막 기관에 인사를 드리러 왔을 8월 무렵부터 이 티셔츠를 꼭 갖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저는 활동이 전부 끝나는 날 티셔츠를 선물로 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11월 28일 교장선생님께서 갑작스럽게 사직하시면서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로 귀국하는 건가 싶었는데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0분 지연이 있었음에도 개관식은 제시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기관 측 환영사부터 본부 측 축사, 팀장의 프로젝트 추진과정 소개 및 영상 시청, 리본커팅식과 인계서류 서명식, 기관측 감사인사(선생님 및 학생), 케이크 커팅식 등 약 1시간에 걸친 행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과 발전기실 투어까지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11시 50분으로, 식사업체만 제시간에 온다면 이동시간 40분을 고려하더라도 본부 직원분들이 오후 2시에 예정된 아루샤중(고등)학교의 현장사업 개관식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회를 보는 중간중간 팀장과 이노센트 선생님께 거듭 여쭈어보며 점심식사 차량이 오는 시간이 11시 30분이라는 것을 확인까지 해둔 터라 모든 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가장 크게 걱정했던 개관식도 무사히 마쳤으니 변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개관식이 끝난 후에도 이미 도착했어야 할 출장뷔페 서비스차량은 보이지 않더군요. 이에 대해 제가 이노센트 선생님께 직접 여쭈어보니 12시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12시 10분이 되어도, 20분이 되어도 차량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회자로써 기관측과 본부측 손님들께 일일이 정중하게 사과드리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FM님께서는 대충 예상했다는 반응이시길래 왜 그런지 여쭈어보니, 이번 업체가 1기 때도 기관 측에서 이용했던 서비스이며 그 당시에도 1시간 이상 지각했다고 하시더군요. 어째서 이런 업체를 기관 측에서 아직도 이용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무사히 개관식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다만 유일하게 출장부페 서비스와의 연락수단을 갖고 있는 이노센트 선생님을 재촉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열심히 전화로 재촉하시던 이노센트 선생님께서도 기다리다 못해 출장부페 서비스차량을 마중나가기 위해 오토바이를 이끌고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오토바이와 차량 한 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다리던 식사서비스 차량이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12시 40분으로 약속시간으로부터 무려 1시간 10분이나 지난 후라서 굉장히 초조하고 화가 많이 났지만, 지금은 감정을 우선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출장부페 서비스 인원들을 도와 음식세팅을 서둘러 마친 후 컴퓨터실에서 참석자분들을 향해 정중하게 사과드리며 식사장소인 컴퓨터실 옆 건물의 빈 교실로 안내했습니다. 다행히 식사를 나눠주고 자리까지 안내하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던 터라 오후 1시 20분 이전에 모든 사람들의 식사가 끝났습니다. 40분 식사라는 촉박한 일정이었음에도 모두 이해해 주는 분위기여서 다행이었습니다.
모든 참석자들을 배웅한 뒤 팀장과 저, 그리고 남자 단원분께서는 개관식을 진행했던 컴퓨터실을 말끔히 정리했습니다. 현수막을 때고, 교무실에서 가져왔던 의자를 되돌려놓고 나니 비로소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12월에도 교사수업처럼 기관 측에서 요청한 프로젝트가 몇 개 더 있었지만, 교장선생님이 바뀐 뒤로 그대로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이노센트 선생님께 이에 대해 여쭈어봐도 ‘새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봐야 한다’고만 하실 뿐이었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아쉬웠지만 기관 측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무언가를 더 이상 밤을 새 가면서까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가장 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오후 2시 반까지 뒷정리를 마친 우리는 Artisan으로 가서 뒤풀이를 즐긴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2. 기념품구매와 시위대비 (12월 2일 ~ 12월 5일)
최종성과공유회도, 현장사업 개관식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야 조금 여유를 되찾고 숙소에서 푹 쉬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게 좋게 돌아가지만은 않았습니다. 시위집행부는 10월 말 선거 불복 시위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를 돌려달라는 등의 몇 가지 요구사항을 밝히며 독립기념일인 12월 9일에 시위를 한 번 더 진행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본부에서는 단원들에게 비상연락망 최신화, 단원 주도 대피계획 제작 등의 업무를 지시했으며, 12월 3일부터 총 4일간의 휴가를 제출했던 저를 포함한 7명의 단원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반려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상황이 저번처럼 심각해질 경우 케냐 쪽으로 이동한 뒤 탄자니아에서 귀국하는 방안까지 진지하게 논의되었습니다. 격리는 12월 8일부터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로 기한에 정함이 없었으므로 탄자니아 기념품을 사러 갈 시간은 이번 주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팀장은 Maasai Market of Curious and Crafts와 Cultural Heritage Centre, 그리고 Home Market을 돌며 이것저것 기념품을 골랐습니다. Maasai Market과 Cultural Heritage Centre에서는 친척들과 가족들에게 줄 용도로 아프리카 그림이 그려진 나무그릇과 마사이 부족 모양의 키링, 냉장고 자석, 그림을 구매했고 Home Market에서는 주로 Africafe와 같은 기성품 커피를 구매했습니다. 지금 와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기념품을 구입하실 때는 Cultural Heritage Centre보다는 Maasai Market of Curious and Craft를 이용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Maasai Market에서 상인들이 아무리 몇 배 높은 가격을 부르더라도 Cultural Heritage Centre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Maasai Market처럼 호객행위가 많은 곳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몇 배 높은 가격인 것을 알더라도 Cultural Heritage Centre에서 대부분의 물건을 구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팀장은 고맙게도 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떤 기념품이 좋은지 함께 고민해 줬습니다.
이틀에 걸친 기념품 구입이 끝난 뒤에도 저희는 쉴 수 없었습니다. 12월 9일 대규모 시위예고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2월 4일부터 5일까지 총이틀에 걸쳐 FM님의 도움 아래 식료품 등의 필요한 물자를 구입했습니다. FM님께서 각 숙소당 12L짜리 물 7병씩 지원해주시기는 했지만, 식료품은 저희의 생활비 안에서 사야 했기에 다양한 변수를 치밀하게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첫째, ‘물자를 얼마나 구입해야 하는가’입니다. 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준비하라고 한 양은 ‘숙소에서 일주일 동안 외출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양’입니다. 여기서 ‘일주일’은 시위가 심각해져서 외출을 아예 하지 못하면서도 탄자니아에서 벗어나지 못할 상황을 상정한 기간입니다. 그러나 만약 중도귀국을 해야 할 상황이 오던가 상황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적은 생활비를 낭비하게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저는 타협안으로 7일 동안 최소 양만 먹는다는 가정 아래 식료품을 구입했습니다.
둘째, ‘어떤 음식을 구입해야 하는가’입니다. 전기가 불안정한 탄자니아에서는 신선식품이 그대로 상해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한 제한된 금액 안에서 물건을 사야 하기 때문에 가격도 무시할 수 없는 고려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실온보관이 용이하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구입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한 봉지당 2,000 TZS밖에 하지 않으면서도 실온보관이 용이하며 조리에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스파게티면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만약 탄자니아도 우리나라의 도시가스처럼 관리하는 형태였다면 불을 사용하지 못할 위험도 고려해야 했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탄자니아에서는 집집마다 가스통을 나눠주는 형태여서 불을 사용하지 못할 위험은 고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중도귀국을 대비해 가족들에게 줄 기념품을 구입해 두었고, 식료품이나 물도 저번보다 훨씬 많이 사두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이 끊길 때를 대비해 12월 영상편집 소스와 유튜브 프리미엄 오프라인 저장도 잔뜩 해두었습니다. 당장 추진해야 할 프로젝트도 없어 무언가를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10월 말 그때보다 모든 것이 더욱 완벽해졌습니다. 남은 건 12월 9일 시위가 심각해지지 않기를 비는 일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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